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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및 분석

영화 <브로커> 리뷰 : 고레에다 감독이 전하는 가족의 또 다른 형태

by intima 2025. 5. 25.

아기와 엄마, 그리고 남자 두 명이 나란히 서 있는 이미지.

 

1. 영화 기본 정보

  • 제목: 브로커 (Broker)
  •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Hirokazu Kore-eda)
  • 각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 출연: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아이유), 이주영
  • 장르: 드라마
  • 제작국가: 대한민국
  • 개봉연도: 2022년 6월
  • 상영시간: 129분
  • 수상내역: 2022년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송강호) 수상

2. 줄거리 요약

부산의 한 교회 앞 베이비 박스에 아이가 버려진다. 베이비 박스는 아이를 익명으로 두고 갈 수 있도록 만든 장치지만, 영화 속 주인공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이 시스템을 악용해 아이를 몰래 데려가고 입양을 원하는 이들에게 돈을 받고 넘긴다.

하지만 그들의 '브로커' 행위는 단순한 불법행위가 아니다. 이들은 아이가 진정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집을 찾아주려는 나름의 사명감을 지니고 있고, 버려진 아이를 책임지려는 태도가 어딘가 묘하게 진심이다. 그러던 중, 아이의 생모 소영(이지은)이 다시 나타나 이들과 함께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녀 또한 자신의 아이를 정말 사랑하는지, 양심과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이다.

이들의 여정을 단속을 맡은 형사 수진(배두나)과 이 형사를 보조하는 후배(이주영)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결국 영화는 단순한 범죄물이 아니라, '가족이란 무엇인가', '버려진 생명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3. 영화 <브로커> 선정 이유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일본 사회의 가족 해체와 유사 가족 공동체를 다뤄온 감독이다. 그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등을 통해 혈연 중심의 가족 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 새로운 가족의 정의를 제안해 왔다.

『브로커』는 한국이라는 배경을 빌려, 법과 도덕의 회색지대에서 진짜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사회가 규정한 가족이 아닌, 함께한 시간과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감정의 총합을 통해 "누가 진짜 부모인가, 그리고 진짜 가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4. 등장인물과 핵심 장면 분석

4-1. 상현 (송강호 분)

중고 세탁소를 운영하며 '브로커' 일을 하는 남자. 겉으로는 돈을 위해 아이를 거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진심이 드러난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과 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며, 누군가를 진심으로 돌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준다.

핵심 장면 : 차 안에서 소영에게 "그래도 아이는 살아야지 않겠어요"라고 말하는 장면. → 생명을 존중하고 책임지려는 그의 태도는 '브로커'라는 단어가 가진 차가운 이미지와는 대조적이다.

4-2. 동수 (강동원 분)

상현과 함께 일하는 청년. 고아원 출신으로, 가족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진실된 가족의 의미를 갈구한다. 소영과의 감정선에서도, 그는 조심스럽고 섬세하다.

핵심 장면 : 경찰에게 체포되기 직전 소영과 아이를 바라보는 장면 → 동수의 내면에는 '함께 있었던 시간'이 가족을 만든다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4-3. 소영 (이지은 분)

아이를 버렸지만 다시 돌아온 생모. 그녀는 가장 복잡한 인물이다. 과거의 상처와 아이에 대한 책임감,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갈등한다. 그녀의 변화는 이 영화가 단순히 구조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복원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핵심 장면 : 비 오는 날 기차역 벤치에서 아이를 안고 우는 장면 → 소영은 그제야 자신이 '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5. 주제 해석 : 가족이라는 관계의 재정의

5-1. 법적 가족 VS 감정적 가족

이 영화는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 버린 부모, 이들을 감시하는 경찰까지 모두 등장시킨다. 이는 가족이란 관계가 국가 시스템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비판한다. 오히려 함께한 시간, 서로를 위한 선택이 '가족'을 완성시킨다.

고레에다는 베이비 박스라는 장치를 통해 현대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다.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 동시에 생명을 상품화하는 통로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며, 제도적 안전장치의 한계를 지적한다.

5-2. 생명을 품는 공동체란 무엇인가?

버려진 아이가 주는 울림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쉽게 생명을 포기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아이를 거래의 대상으로 다루는 구조가 문제라기보다는, 그런 구조를 가능하게 만든 사회의 무관심이 더 큰 문제이다.

영화는 '브로커'라는 직업을 통해 돌봄 노동의 상품화생명의 시장화라는 현대 사회의 첨예한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과정에서도 진실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이야기한다.

5-3. 용서받을 수 없는 선택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소영의 이야기는 비난받아 마땅해 보이지만, 영화는 그녀를 통해 인간은 누구나 회복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임을 말한다. 이것은 고레에다가 반복적으로 말해온 주제이기도 하다.

특히 소영의 캐릭터는 모성의 이미지를 부정하게 한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 아니며, 모성 또한 학습되고 발견되는 감정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전통적인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이자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6. 이야기 속에서 찾아보는 철학적 질문

6-1. "가족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브로커』는 혈연, 법적 서류, 출생 신고가 아닌 '함께 한 시간'과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가족을 만든다고 말한다. 이는 존 롤스의 정의론이나 마사 누스바움의 돌봄 윤리와도 연결된다. 진정한 가족은 계약이 아닌 돌봄과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레에다가 제시하는 '선택된 가족(chosen family)'의 개념이다. 이는 퀴어 이론에서 발전된 개념으로, 혈연이 아닌 선택과 의지로 형성되는 가족 관계를 의미한다. 영화는 이러한 대안적 가족 형태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6-2. "선함은 법을 어길 수 있는가?"

상현과 동수는 법을 어기고 있지만, 이들은 생명을 거래하는 악인이 아니다. 이 영화는 도덕적 딜레마의 회색지대를 탐색하며, '선의의 불법'이라는 윤리적 질문을 제시한다.

이는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학공리주의적 윤리학 사이의 갈등과 유사하다. 법적으로는 잘못된 행위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의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딜레마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무엇이 옳고 그름이 아닌, 회색지대 속에서 진정 우리가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기준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게 만든다. 

6-3. "그녀는 왜 다시 자신의 아기를 품으려 하는가?"

소영은 아이를 다시 찾아온다. 이는 그녀가 선택을 되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고 치유받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영화는 이를 통해 인간의 회복력과 용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반복 충동(repetition compulsion)과 치유적 반복의 차이를 보여준다. 소영의 행동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시 써 내려가며 치유하려는 시도이다.


7. 결론 : 버려진 존재들로부터 시작되는 진짜 이야기

『브로커』는 법적, 제도적 문제를 넘어선 인간관계의 본질을 탐구한다. 영화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책임진다는 것은 단순히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선택'과 '돌봄' 때문임을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을 용서하고,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사회의 가족 해체 현상을 일본적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비판적이지 않다. 오히려 "버려진 것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새로운 관계 형성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영화가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고, 브로커들은 처벌을 받으며, 소영 역시 완전한 변화를 이룬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함께했던 시간의 온기"가 모든 것을 의미 있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는 고레에다 감독의 일관된 철학이기도 하다. 완벽한 가족은 존재하지 않지만, 불완전한 인간들이 서로를 돌보려는 노력 자체가 가족을 만든다는 것이다. 『브로커』는 이러한 메시지를 한국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며, 동아시아 사회가 공유하는 가족의 위기와 그 대안을 모색한다.

결국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이 될 수 있는가?" 혈연도, 법적 관계도 아닌, 그저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될 수 있는 관계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자료 출처

  • 영화 <브로커> 공식 보도자료 및 감독 인터뷰
  • Variety, “Hirokazu Kore-eda on Making ‘Broker’ in Korea”
  • 씨네21, <브로커>, ‘우리는 왜 아이를 안고 길을 나섰나’
  • The New York Times, “Reimagining the Meaning of Fam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