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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및 분석

영화 <원더풀 라이프> 리뷰 : 죽음 이후의 삶을 묻는 따뜻한 판타지

by intima 2025. 5. 23.

나이 많은 노인 한 분이 공원 벤치에 앉아 고민하고 있다.

 

1. 영화 정보

  • 제목: 원더풀 라이프 (After Life)
  •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 개봉연도: 1998년
  • 장르: 드라마, 판타지
  • 러닝타임: 118분
  • 국가: 일본
  • 원제: ワンダフルライフ (Wandafuru Raifu)

2. 줄거리 요약

사람은 죽고 나면 어디로 가는가? 이 영화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역’과도 같은 장소에서 시작된다. 죽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단 일주일 동안 자신이 생전에 경험했던 수많은 기억 중 단 하나의 기억만을 골라야 한다. 이후 그 기억은 영화로 재현되어, 선택한 순간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중간역에서 일하는 ‘상담자’들은 죽은 이들과 면담하며 그들의 기억을 듣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 고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죽은 이들이 자신의 기억을 고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어떤 이는 슬픔에 가려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인생을 가치 없다고 평가하며 고민에 빠진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여러 인물들의 삶의 단면을 따라가며, 우리가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삶의 본질’에 대해 되묻는다.

특히, 전직 군인이자 노인이 된 와타나베는 한 소녀와 공원을 산책했던 평범한 하루를 기억으로 고르면서, 관객에게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3. 시작하며 : 영화 <원더풀 라이프 (After Life)>를 선정한 이유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일본 영화계에서 삶과 죽음, 관계와 기억이라는 테마를 가장 정교하게 다뤄온 감독 중 하나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등 이후의 작품에서도 보이듯, 그는 삶의 무게를 유려하면서도 섬세하게 포착한다. 그 가운데 <원더풀 라이프>는 그의 초기작이자 철학적 실험이 극대화된 영화다.

오늘날 우리는 지나치게 빠른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묻는 여유조차 없이 살아간다. 이 영화는 그 흐름을 거스르며,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단 하나의 기억은 무엇인가?”
이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질문은, 삶의 진정한 가치와 방향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이 영화를 다루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4. 등장인물과 핵심 장면 분석

🔹 와타나베

9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는 상담자들과의 면담 과정에서 별다른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점차 떠오르는 기억은, 젊은 시절 한 여자아이와 공원을 거닐던 조용한 오후였다.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기억으로 택한 그의 선택은, 관객에게 잔잔한 충격을 준다.

🔹 모치즈키

중간역의 상담자 중 하나인 그는 실제로는 과거에 자신도 죽었으나, 기억 선택을 하지 못하고 상담자로 남은 인물이다. 그는 한 여성의 사연을 통해 자신의 삶과 죽음을 되짚게 되며, 후반부에서 스스로의 기억을 마주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 핵심 장면 : 기억의 재현

선택된 기억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제작진이 마치 단편 영화 하나를 촬영하듯 조명을 설치하고, 장면을 연출하며 기억을 구현해내는 과정은 영화가 갖는 메타적 구조를 잘 보여준다. 이 장면은 죽은 이들의 감정과 관객의 감정을 하나로 묶어내며, 강한 여운을 우리에게 남긴다.


5. 주제에 대한 해석

<원더풀 라이프>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였는가?
  • 우리는 왜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가?
  •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영화는 단순히 ‘죽음 이후의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 그 자체에 대한 고찰을 중심에 둔다. 한 사람이 선택한 기억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대부분의 인물들이 ‘특별한 날’보다 ‘평범한 날의 소소한 순간’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평소 지나쳐왔던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이 영화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향해 나아간다:

“삶은 기억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평범한 하루에서 비롯된다.”


6. 철학적·인문학적 관점에서의 해석

🔸 인간은 기억을 통해 존재한다

<원더풀 라이프>는 인간 존재를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한다. 죽은 이들은 살아온 삶의 수많은 경험 중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해야 하며, 이는 곧 그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행위로 연결된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한 인간이 누구였는지를 정의하는 중요한 단서다.
철학자 존 록크는 “기억이 곧 자아의 연속성을 보장한다”고 보았으며, 이는 영화가 전개하는 구조와 정확히 맞물린다. 즉, 인간은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기억을 통해 지속되는 존재로 묘사된다.

🔸 행복은 평범한 순간에 있다

작중 인물들이 선택하는 기억은 대부분 화려하거나 극적인 사건이 아닌, 매우 일상적이고 조용한 순간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눈 내리던 날의 풍경, 연인과 나눈 산책, 부모님과의 따뜻한 식사 등이다. 이는 관객에게 다음과 같은 인식을 전한다.

삶의 진짜 의미는 비범함이 아니라 평범함 속에 숨어 있다.
우리는 종종 의미 있는 삶을 찾기 위해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만, 실상 기억으로 남는 순간은 감정적으로 충만했던 작은 경험들임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 고통은 선명하고, 행복은 설명되기 어렵다

여러 인물들이 "행복한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이는 인간이 고통이나 상처는 또렷하게 기억하지만, 행복은 그 순간에 머물다 흐릿해지는 경향이 있음을 반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 기억할 수 있을 때만 존재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우리가 현재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행복을 놓치고 있는지를 반추하게 만든다.

🔸 기억의 선택은 삶의 재해석이다

기억을 고르는 행위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동적인 해석의 과정이다. 이는 철학자 폴 리쾨르가 제시한 ‘서사적 자아(narrative identity)’ 개념과도 통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조직함으로써 정체성을 구축하며, 이 영화는 그러한 ‘자서전적 재구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원더풀 라이프>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을 넘어, 삶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더 나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7. 결론 : 기억을 통해 삶을 다시 보는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죽은 자들이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살아 있는 이들이 삶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극적인 전개나 시각적 자극보다는, 조용하고 절제된 톤으로 관객의 내면을 깊이 있게 자극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묻는다는 점이다. 죽은 이들의 기억 선택 과정을 바라보며, 관객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된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떤 기억을 쌓고 있는가?”, “지금 이 삶을 나는 어떻게 해석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조용히 스며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삶과 죽음, 기억과 정체성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일상적인 언어와 이미지로 풀어냈다. 이는 단지 영화적 성취에 그치지 않고, 관객 개인의 삶에 실질적인 반향을 일으킨다.

결국 <원더풀 라이프>는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빌려, 지금 이 순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삶은 매일매일 쌓여가는 기억의 조각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조각 중 하나가, 결국 나의 인생이 된다.”

 

이 영화는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바쁜 현실에 쫓겨 놓치기 쉬운 삶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특히 자신만의 기억을 정리하고 싶은 이들,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원더풀 라이프>는 가장 조용하고 진실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8. 자료 출처

  • 영화 <원더풀 라이프> (1998),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Criterion Collection: After Life - Director Interview
  • NHK 다큐멘터리 “死後の記憶を選ぶ” 인터뷰
  • 철학사전 (존 록크의 기억 이론, 리쾨르의 서사적 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