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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및 분석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리뷰 : 자연과 인간, 선과 악의 불분명한 경계

by intima 2025. 6. 15.

숲길을 배경으로 안개가 자욱한 아침에 한 남성과 어린 소녀가 함께 걷고 있는 모습으로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이미지.

 

 

1. 영화 정보

  • 영화 제목: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Evil Does Not Exist)
  •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 개봉 연도: 2023년
  • 장르: 드라마, 철학적 미스터리
  • 상영 시간: 약 106분
  • 수상: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

2. 줄거리 요약

일본 나가노현의 한 외진 마을 하르모니카에서, 타카미라는 이름의 조용한 남자와 딸 하나는 숲과 물을 벗 삼아 살아간다. 마을은 자연과 긴밀히 공존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 날, 도시의 대형 기획사로부터 이 지역에 ‘럭셔리 글램핑 캠프’를 설치하겠다는 개발 제안이 들어온다. 주민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열린 설명회에서 회사 측은 상업적 이익을 내세우지만, 주민들은 정화되지 않은 폐수가 계곡으로 유입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반발한다.

회사는 타카미를 스카우트하려 하지만, 그는 침묵과 고요 속에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사건은 예기치 않게 비틀리기 시작하고, 끝내 충격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영화는 뚜렷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으며, ‘악’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로 마무리된다.


3. 등장인물 및 핵심 장면 분석

타카미 — 자연과 동화된 인간

타카미는 숲과 물을 돌보는 동시에, 지역 생태계의 질서를 지키는 인물이다. 그의 대사는 거의 없지만, 행동과 표정, 생활 방식 자체가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어떤 이념이나 대립을 내세우지 않으며, 침묵으로 저항한다. 말 대신 자연과 조율하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문명화된 인간 중심 사고에 질문을 던진다.

글램핑 기획사 직원들 — 시스템의 대변자들

도쿄 본사의 젊은 직원들은 친근하고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그들의 역할은 자본의 입장을 전달하는 전달자일 뿐이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회에서도 실질적인 해결책 없이 상투적인 답변만을 반복한다. 영화는 이들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쉽게 관통하는가를 보여준다.

설명회 장면 — 공동체의 윤리적 감각

가장 긴장감 넘치는 장면은 주민 설명회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의견 교환이 아닌, 삶의 방식과 윤리 체계 간 충돌로 드러난다. 개발은 편의성과 수익을 약속하지만, 주민들은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을 직감적으로 거부한다. 이 장면은 말의 대결이 아닌 삶의 태도의 대립으로 작동한다.


4. 주제 해석 — 조용한 풍경 속에서 드러나는 다섯 가지 삶의 질문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연을 단지 배경으로 쓰지 않는다. 숲, 물, 나무, 계절은 모두 영화의 중요한 요소이며, 인물들과 연결된 존재다. 타카미는 나무를 자르고 물을 관리하며 살아가지만, 그 행위는 개발이 아니라 자연의 방식에 맞춘 삶의 태도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자연과 함께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자연을 단지 소비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함께 살아가는 태도. 그것이 영화 속 타카미가 보여주는 삶이며, 관객에게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악'은 정말 존재하지 않을까?

영화 제목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마지막에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관객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말 악이 존재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몰랐을 뿐일까?

하지만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말한다.

“누가 나쁜 사람인지, 누가 선한 사람인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나누지 않는다. 대신, 상황과 입장에 따라 행동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은 판단보다 이해와 질문에 더 가까워지게 된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타카미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나무를 자르고, 딸과 함께 살아간다. 이 침묵은 무관심이나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말 대신 자신의 방식으로 행동하며 주변을 지켜본다.

영화는 말한다.

“모든 답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때때로 가장 깊은 생각은 말보다 행동에서 나타난다. 타카미의 침묵은 그저 조용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을 향한 깊은 신중함이다. 그리고 그것은 요즘 우리에게 낯선 태도이기도 하다.


5. 철학적 질문을 통한 해석 —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세 가지 물음

“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지역 발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발전이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역 사람들은 이미 자연과 함께 살아가며 만족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더 편리한 삶'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영화는 묻는다.

“우리가 말하는 발전은 정말 우리 모두에게 좋은 걸까?”
“누군가의 편리를 위해 누군가의 삶이 무너져도 괜찮은 걸까?”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수많은 갈등과도 연결된다. 도심 확장, 재개발, 대형 마트의 진출 등. 이 영화는 그런 문제들을 조용히, 하지만 깊게 들여다본다.

 “옳고 그름은 누구의 기준으로 정해지나요?”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행동한다. 회사 직원들도 나쁘지 않게 보이고, 타카미도 항상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누가 ‘악’인지, 누가 ‘선’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영화는 그 불확실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즉,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모든 행동은 누군가에게는 이해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어요.”

 

이처럼 영화는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틀을 넘어서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문제들을 남긴다.

“우리가 따르는 질서는 무엇인가요?”

타카미는 자연의 질서를 따라 살아간다. 도시의 법이나 제도보다, 자연의 리듬과 규칙을 더 신뢰한다. 그는 법을 어기지도 않고,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따르는 기준은 누가 만든 걸까?”
“그 기준은 정말 모두에게 옳은 것일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리에게 인간 중심의 질서가 아닌, 자연 속에서 오래 이어져 온 삶의 방식이 때로는 더 지혜롭고 깊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6. 결론 — 정답이 없는 질문, 그러나 반드시 마주해야 하는 삶의 이야기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뚜렷한 결론이나 메시지를 주지 않는다. 대신 우리의 일상, 삶의 방식, 도덕과 판단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타카미는 말하지 않지만, 그의 침묵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회사 직원들은 친절해 보이지만, 그들이 따라온 구조와 시스템은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말과 행동, 선과 악, 자연과 인간 사이의 애매한 경계를 계속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무슨 논리를 근거해서 살아가고 있는가?”
“과연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건 무엇인가?”

 

결국,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순히 ‘악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악이라는 단어조차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 영화는 우리가 너무 쉽게 내리는 판단을 멈추고,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7. 자료 출처

  • IMDb – Evil Does Not Exist (2023)
    https://www.imdb.com/title/tt28293382
    : 영화 기본 정보, 감독, 출연진, 러닝타임 등 제공.
  • 베니스 국제영화제 공식 웹사이트 (La Biennale di Venezia)
    https://www.labiennale.org
    : 제80회 베니스영화제 수상작 리스트 및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수상 내역 참조.
  • 영화 공식 배급사 자료 – NEOPA / Comme des Cinémas (프랑스), C&I 엔터테인먼트 (일본)
    : 시놉시스, 배급용 자료, 감독 인터뷰 인용.
  • The Hollywood Reporter – “Venice: Ryusuke Hamaguchi’s ‘Evil Does Not Exist’ Explores Quiet Resistance”
    https://www.hollywoodreporter.com
    : 해외 영화 평론가의 인터뷰 내용 및 비평 분석 참고.
  • Sight and Sound (British Film Institute)
    https://www.bfi.org.uk/sight-and-sound
    : 하마구치 감독의 연출 특징, 전작과의 비교, 영화적 해석 관련 비평.
  •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인터뷰 – 일본 <아사히신문>, <The Japan Times>
    : “자연과 인간, 사회적 구조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감독의 철학적 발언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