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리뷰 및 분석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 미야자키 하야오가 남긴 마지막 질문

by intima 2025. 5. 16.

교복을 입은 어린 소년이 몽환적인 분위기의 이세계에서 물 위에 서있다.

 

 

1. 영화 정보

  • 제목: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 The Boy and the Heron)
  •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 개봉일: 2023년 7월 (일본), 2024년 1월 (한국)
  • 장르: 애니메이션, 판타지, 성장 드라마
  • 러닝타임: 124분
  • 관람 등급: 전체 관람가
  • 수상 내역: 제96회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수상,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애니메이션상 외 다수
  • 참고 문헌: 요시노 겐자부로의 동명 소설(1937)에서 제목을 차용하였으나, 내용은 별개의 창작물

2. 줄거리 요약 : 죽음을 통과하며 삶을 배우는 소년의 이야기

1940년대 일본, 12세 소년 마히토는 어머니를 화재로 잃고 큰 상실 속에서 살아간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시골의 큰 저택으로 이사하게 된 마히토는 그곳에서 미스터리한 회색 왜가리를 만나게 된다. 이 왜가리는 단순한 새가 아니라 말을 하는 신비로운 존재로, 마히토에게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건넨다.

마히토는 왜가리를 따라 이계(異界)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현실과는 다른 존재들과 마주한다. 이계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며, 말하는 앵무새, 불사의 조카들, 그리고 고인이 된 어른들이 뒤섞인 판타지 세계다. 마히토는 다양한 인물과의 만남과 시련을 통해 상실의 의미, 용기의 본질, 그리고 삶을 향한 태도를 깨닫게 된다.


3. 영화 선정 이유 :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언 같은 작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 선언 이후 다시 돌아와 만든 작품이며, 일생의 철학과 미학이 총 집약된 ‘작별의 영화’로 해석된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어린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아름다운 판타지가 아니라, 존재와 윤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담긴 영화이기에 주목할 가치가 크다.


4. 등장인물 및 핵심 장면 분석

▍마히토 – 상실을 통과해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

마히토는 영화의 시작부터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세상에 대한 분노와 무력감을 남긴다. 하지만 그는 이계를 여행하면서 감정의 억압을 넘어서고, 타자와 소통하고, 선택을 배우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내면의 성장서사다.

 

핵심 장면 : 마히토가 불사의 존재들을 보고 “나는 이 세계에 머물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은,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삶을 선택하는 결단의 순간이다.

▍회색 왜가리 – 안내자인 동시에 시험자

말하는 왜가리는 초기에는 교활하고 의심스러운 존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결국 마히토를 이계로 이끌고, 그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트릭스터(trickster)*’적 존재다. 진실과 거짓, 생과 사를 연결하는 경계자 역할을 수행한다.

*트릭스터(trickster) : 도덕과 관습을 무시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장난꾸러기 같은 존재를 지칭. 

▍노인의 성 –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세계

이계에서 마히토가 만나는 성은 일종의 ‘시간의 무덤’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여 있으며, 현실 세계와는 다른 법칙이 작동한다. 그곳의 노인은 창조를 반복하지만, 새로운 창조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려 한다. 이는 미야자키 자신을 투영한 존재로 읽히며, 예술과 삶의 계승이라는 주제를 반영한다.


5. 주제 분석 : 삶과 죽음, 선택과 용기에 대한 동화

▍상실의 정면 돌파 : 슬픔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

영화 초반, 마히토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외면하며 자신을 고립시킨다. 그러나 이계에서 다양한 존재들과 마주하면서 그는 점차 감정을 받아들이고, 상실을 지나가는 방법을 배운다. 이는 ‘애도’를 거쳐야 비로소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윤리적 질문의 복원

제목은 단순한 문장이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질문이다. 마히토는 반복적으로 자신의 선택을 묻는다. 무질서한 세계에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혼란을 통과해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것인가. 이 질문은 관객 모두에게 향해 있는 윤리적 질문이기도 하다.

▍이계의 구조 – 타자의 시선으로 본 현실

이세계는 현실의 왜곡이자 은유이다. 인간의 욕망, 회피, 불멸에 대한 탐욕, 자연의 순환이 상징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현실에서 회피하는 문제들을 은유적으로 비추어, ‘지금 여기’의 삶을 재성찰하게 만든다.

"마치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 빠져 숨어 있을지, 환상 속에서 벗어나 용기를 가지고 현실을 마주할지 묻는 듯하다."


6. 철학적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 주제

▍실존적 성장 : 아이에서 인간으로

마히토는 단순한 아이가 아니다. 그는 질문하는 존재다. 죽음의 의미를 묻고, 어른의 세계를 관찰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 있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이는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자기 이해를 통해 존재에 도달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죽음과 기억 : 남겨진 자의 책임

이계에서 마히토가 마주하는 죽은 어른들, 불사의 존재들, 과거의 잔해들은 모두 ‘기억’의 형상화다. 그는 이들을 단순히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함으로써 삶의 일부로 만든다. 이는 니체의 말처럼 “기억이 없는 삶은 반복이고, 기억이 있는 삶은 선택”이라는 관점과 연결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예술윤리 : 상상과 도치, 그리고 책임

이 영화는 단순한 창조의 결과물이 아니다. 미야자키는 이 작품을 통해 “상상력은 도피가 아니라 책임”임을 말한다. 마히토가 이계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선택은, 현실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이는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7. 결론 : 미야자키가 남긴 마지막 질문, “그대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단순한 성장 서사나 모험 판타지를 넘어, 삶의 본질과 인간 존재의 윤리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은 작품이다. 특히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개인적 고백이자, 후세를 향한 유언과도 같은 울림을 전한다.

마히토는 이 세계에서 상처 입고, 이계를 통해 자신과 화해하며,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 여정은 환상 속 도피가 아닌, 현실을 더 깊이 살아내기 위한 자기 탐색의 과정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으며,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배우게 된다. 이는 단지 한 소년의 성장담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삶의 고통과 상실을 딛고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보편적 물음이다.

미야자키는 질문을 던지되 결코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각자의 삶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으라고 말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유효한 질문이며, 우리는 이 질문을 통해 매일의 선택을 구성하게 된다.

또한 이 영화는 “남겨진 이들의 몫”에 대해 말한다. 죽은 자는 떠났고, 남은 자는 그들을 기억하며 살아간다. 마히토는 떠난 자의 삶을 잊지 않고, 그들의 흔적을 품에 안은 채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바로 진짜 애도이며, 인간다운 태도이다.

무엇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어른들을 위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어릴 때는 몰랐던 상실의 무게, 선택의 책임, 그리고 용기의 정의를 다시 묻는다. 이 영화는 말한다.
“당신은 이제 어른이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은 관객 각자의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린다. 그것은 도덕이 아니라 철학이고, 명령이 아니라 격려이며, 삶의 무게 앞에 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길 중 하나를 스스로 찾아나가게 하는 고요한 손짓이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질문을 우리에게 남긴 것은, 이 세계에서 우리가 더 깊이, 더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8. 자료 출처

  •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2023) 본편
  • 스튜디오 지브리 공식 홈페이지
  • 미야자키 하야오 인터뷰, NHK 다큐멘터리 『프로페셔널』 시리즈
  • 요시노 겐자부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1937)
  • 『존재와 시간』 - 마르틴 하이데거
  • 『비극의 탄생』 - 프리드리히 니체